
제가 사는 집의 베란다 창문 밖으로는 작은 산이 하나 보입니다. 멀리 있는 산이 아니라 바로 건물과 붙어있어서 좋은 점들이 많습니다. 우선은 산바람과 함께 풀냄새가 좋고요. 밤에는 귀뚜라미 소리와 함께 가끔은 뻐꾸기 소리도 들리기도 해요. 혼자 있을 때면 전설의 고향 분위기를 느낄 수 있죠. ^^ 얼마 전에는 뭔가 베란다 쪽에서 '딱딱 딱딱' 벽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나서 봤더니만 딱따구리인지 웬 새 한 마리가 벽을 쪼고 있는 게 아닙니까! 인기척에 날아가서 사진을 못 찍은 게 못내 아쉽더라고요. ㅠㅠ 또 온갖 새소리를 들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새소리가 너무 시끄러울 정도라니까요! 그 뭔가 굉장히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새가 있는데 여러 마리가 몰려와서 울면 허공에 대고 '조용히 좀 하자~'라는 ..

서른 편의 이야기로 약 10개월간의 간암 간병기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1년 하고도 반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 당시에 간병을 하면서 적어두었던 투병 일지를 다시 꺼내 들 수 있었다. 그때의 막막하고도 절실했던 마음들이 생생하게 떠올랐고 다시 마음이 아프기도, 힘들기도 했지만 누군가 나와 우리 가족들이 그랬던 것 같은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면 내가 겪었던 이야기들을 읽고 아주 작은 도움이나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쩌면 비로소 아빠를 온전히 떠나보는 내 여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빠는 우리 가족들에게 그리 살가우신 분은 아니었다. 또 그리 좋은 아빠도 아닌 그냥 그 시대의 아빠였고 엄마에게는 더욱 그러했던 남편이었다. 지금 아빠를 떠나보내고 후회되는 일은 ..

장례식장에 도착을 하니 전화했던 상조 회사에서 장례 지도사 분이 와계셨다. 차를 내어주시며 조금 기다려 주시고 얘기를 나눴다. 아빠의 병세가 많이 악화되면서부터 가족들은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를 미리 준비했어야 했다.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를 대비했던 건데 정신없이 닥쳐서 뭐라도 소홀히 하고 싶지 않았던 엄마의 맘이 제일 컸기에 하나하나 꼼꼼히 생각하고 준비했다. 우선은 영정 사진을 준비하고 (영정 사진을 미리 찍어두신 게 아니기에 가족들이 가지고 있던 아빠의 사진 중에서 좋은 사진들을 몇 장 모아 영정 사진을 만들어주는 업체에 의뢰해서 준비했다) 상조 회사는 예전부터 가입되어 있었던 터라 상조 회사에 전화를 걸어 만약 가족이 돌아가시게 되면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 지를 물어서 메모해 놓았고 가족들에게도 알려..

사망 선고를 받고 누워 있는 아빠를 잡고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흘렀다. 간호사가 들어와 뭔가 분주하게 움직였지만 그저 탄식과 함께 눈물이 흐를 뿐이었다. 간호사가 위로의 말을 건네주었다. 그제야 고개를 들고 '돌아가실 때 많이 힘드시진 않았을까요... 잠깐 잠이 든 것뿐인데 그 사이에 돌아가셨어요. 임종도 못 보다니...' 하고 말을 잇지 못하자 간호사는 '4시 넘어서 제가 아버님 상태를 체크하러 갔었어요. 그때까지도 잘 주무시고 계셨어요. 아마도 마지막 모습을 따님께 보이고 싶지 않으셨나 봐요. 편하게 가셨으니 너무 속상해하지 마세요.' 그 순간에는 그 간호사의 말이 너무도 위로가 되었다. 잠시 후에 다른 간호사 한 분이 더 오셨고 아버님 옷을 갈아입혀야 한다며 가지고 있는 옷이 있냐고 물었다. 호스..

엄마와 여동생이 돌아간 후 아빠는 계속 천장을 바라보며 누워계시다가 잠이 드셨다가를 반복하셨다. 분무기로 입안에 물을 뿌려드리고 겔을 거즈에 묻혀 입안을 닦아드렸다. 아빠가 식사를 하신 건 호스피스 병동에 오시던 5일 전 병동에 오셔서 배가 고프다 하셔서 흑임자죽을 조금 데워서 먹여드리고 부족하신 듯하여 밤에 편의점에 가서 사 온 호박죽을 드신 게 마지막이었다. 그게 마지막 식사인 줄 알았다면 더 맛있는 걸로, 더 좋은 걸로 드시게 해 드릴 걸... 아빠를 보내드리고 이렇게 가슴에 남는 말이 '배고파'인 줄 알았다면... 그저 지켜만 보면서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으니 더욱 마음이 아팠다. 새벽 2시쯤 아빠를 지켜보고 있는데 숨소리가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 숨이 많이 찬 건가 싶어 간호사를 호출했다. 바..

호스피스 병동 4인실로 돌아오고 나서 낮에 엄마와 여동생이 찾아왔다. 아빠는 대화를 하시지는 못하고 천장을 멍하니 쳐다보고 누워계시거나 주무시다가 깨서는 소변이 마렵다며 연신 손짓을 하셨다.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긴 지 4일째... 아직 혈액투석을 못하고 계시기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투석을 하지 못하기 때문인지 아빠의 땀에서는 소변 냄새가 났다. 엄마는 물수건을 만들어와 아빠의 얼굴부터 발까지 온몸을 구석구석 닦아주셨다. 아빠의 남은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걸 가족 모두 알고 있었다. 몸을 닦아드리고 침대에 둘러서서 아빠를 바라보고 있는데 아빠가 뭔가 말씀을 하고 싶어 하시는 거 같았다. 알아들을 수 없는 아주 작은 쉰 목소리에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얼굴에 바짝 귀를 갖다 대..

임종실에서 세 번째 날 새벽에 스스로 잠에서 깨시면서 가래도 뱉으시고 '몇 시야?'라고 물으시거나 '물'이라고 하시면서 간단한 대화가 가능해졌다. 간호사가 와서 '힘드세요?', '숨차세요?'라고 물으니 '네'라고 대답도 하셨다. 새벽 3시와 6시, 숨이 차지 않게 하는 주사제와 진통제를 맞으시고 자다 깨다를 반복하셨다. 잠에서 깨시면 자꾸 소변이 마렵다고 하시면서 일어나려고 하셨는데 아빠는 혈액투석으로 인해 오래전부터 소변을 하루에 한 번 정도 보시는 상황이었고 암투병을 하시면서 입원을 하시면 따로 소변 때문에 화장실을 가시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기저귀도 하고 계셨기 때문에 '아빠. 괜찮아. 소변 마려우면 그냥 해. 아빠 기력이 없어서 화장실 못 가서 기저귀 해놨으니까 괜찮아.'라고 말해도 계속 얼..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긴 후 산소 튜브를 하고 있어도 계속 숨이 차고 진통이 있으셔서 밤 11시까지 진통제와 숨찬 걸 완화시켜주는 주사를 4번 맞았다. 가슴에 마약성 통증 패치를 붙이고 진통제를 수차례 맞아도 진통이 심하셨고 부쩍 숨이 차다고 하셔서 잠을 잘 못주무셨다. 잠깐 잠이 드셨다가도 바로 깨고를 반복하셨다. 밤 11시쯤 잠을 통 못자겠다고 간호사에게 말하자 간호사가 약한 수면제라도 주사해 드릴 지를 물어봤고 아빠는 그래 달라고 잠 좀 자게 해달라고 하셨다. 간호사가 의사에게 처방받아 수면제와 진통제를 주사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쉽게 잠이 들지 못하셨고 추가로 수면제를 더 주사했다. 그러고나서 겨우 잠이 드신 듯했는데 옆에서 지켜보기에 호흡이 너무 불안정해 보였다. 간호사를 호출하니 바이탈을 재..

호스피스 병동으로 가기로 가족들과 회의를 한 후 연명의료 계획서를 제출했다. (연명의료 계획서란 말기 환자 및 임종과정(회생의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아니하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되어 사망에 임박한 상태)에 있는 환자의 의사에 따라 담당의사가 환자에 대한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 및 호스피스에 관한 사항을 계획하여 문서로 작성한 것을 말한다. 연명의료 시술(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체외 생명유지술, 수혈, 혈압상승제 투여, 그 밖에 담당의사가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할 필요가 있다고 의학적으로 판단하는 시술)이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치료 효과 없이 임종과정의 기간만 연장하게 된다는 담당의사의 의학적 판단이 있는 경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