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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를 모시고 외래 진료를 다녀오고 이틀 뒤에 주치의에게 보호자 면담을 하기로 했었다.

남동생과 둘이 주치의를 면담하러 병원으로 가서 기다렸는데 주치의는 자리에 없다고 하여 담당의와 면담을 하게 되었다.

('담당의'는 '주치의' 감독 · 지시하에 환자 사소한 것을 모두 다 챙기는 의사로 보통 전공의가 맡게 되며, '주치의'는 보통 과장 · 교수들이 맡게 된다.)

 

그동안 찍었던 CT 사진을 차례대로 보면서 설명을 해주었는데 6개월 새에 폐에 전이가 급속도로 퍼졌고 심해진 상태라고 했다. CT 사진을 보니 처음에는 아주 작은 모래알처럼 몇 개의 알갱이가 보였는데 점점 크기도 커지고 숫자가 많아지더니 며칠 전 찍은 CT에선 정말 시골에서 보는 밤하늘에 별이 떠 있는 듯 폐 안에 꽉 찬 크고 작은 암덩어리들이 보였다. 

 

아... 치료는 불가능하겠구나... 사진을 보니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손을 쓸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상태였다.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기도 하며 설명을 듣고 난 후 담당의는 더 이상의 항암이 불가능하지만 외래진료를 계속 온다면 당연히 증상 완화나 통증 완화와 같은 약이나 주사는 처방을 하며 지금과 같을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호스피스 병동을 제안했다. 하지만 아빠는 혈액 투석을 받고 있는 환자이기에 연명 치료를 중단하는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투석환자를 받아줄 지 확실하지 않다고 했다.

이 부분은 호스피스 병동에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상의를 하며 호스피스 병동에 대해서도 검색을 하면서 알아보게 되었다.

아빠를 간병하면서 나는 물론 우리 가족들 모두, 몰랐던 세상에 대한 것들을 알게 되었다.

내 일이 되고, 내 가족의 일이 되니까 그 때서야 보이는 것들...

 

며칠 후 주치의가 와서 호스피스에 대해 다시 제안을 하며 호스피스에 갔을 때와 계속 소화기 내과에서 증상 치료를 했을 때의 마지막 상황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다.

아빠의 상태가 순간 좋아진 것처럼 보일 수 있어도 폐에 있는 종양은 계속 커질 거고 한 순간 기도를 막아서 호흡 곤란이 올 거고 호스피스가 아닌 소화기내과에 있다면 기도 삽관을 하고 중환자실에 가게 되고 심정지가 온다면 제세동 처치를 하게 될 거고 이런 상황이 몇 번이 될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만약 호스피스에 가게 되면 진정제를 투여해서 고통을 없애주는 통증 완화 치료를 하게 될거고 결국에 심정지가 오겠지만 고통은 없이 가실 수 있다고 했다.

 

나를 비롯해 가족들은 어떤게 더 좋은 것인지에 대해 각자 생각을 해서 논의하기로 했다.

가장 중요했던 건 아빠의 상태에 대해서 인정을 하는 것이었다. 

혈액 투석을 일주일만 받지 못해도 암과 상관없이 돌아가실 수밖에 없는 아빠는 지금도 제대로 투석을 받지 못하는 몸상태였다. 투석을 받을 때마다 힘들어, 못하겠어라고 하시며 투석이 중단됐다. 

투석이 끝나고 나면 밥이든 빵이든 뭐라도 드시면서 한 두시간은 누워계셔야 한 걸음이라도 뗄 수가 있었다.

몇 박자국 걷다가도 휠체어에 타고 가시다가도 혈압이 떨어지고 어지러워 다시 침대에 눕혀드려야 했다.

 

그렇게 아빠의 삶은 고통...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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