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간암 간병기 - 삶의 이야기
잠에서 깨어나듯 혼수 상태에서 깨어나다. (열다섯번째 이야기)
더불어숲2
2020. 7. 8.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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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수상태에 빠지신 지 여섯째 되는 날 새벽 1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계속 주무시던 아빠가 뒤척거리시더니 '배고파' 하면서 스스로 일어나 앉으셨다.
너무 놀라서 '아빠 괜찮아?'를 연신 물으며 바라보았다.
아직 멍하신 표정으로 '여기 어디야?' 라며 병실의 커튼을 젖히라고 하셨다.
새벽시간이라 다른 환자분들이 주무시고 계시니 작은 소리로 '병원이야. 병원. 기억 안 나?'라고 물으며 커튼을 좀 열었다.
배가 고프다고 하셔서 엔커버(장기간에 걸쳐 음식물 섭취가 곤란한 환자들에게 영양분을 공급하는 경장영양제 전문약(ETC))에 빨대를 꽂아 드렸다.
아빠는 지난 며칠간 있었던 일이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 것 같았다.
관장을 몇 번이나 했던 것도, 내가 깨우던 일들도, 억지로 일어나시게 해 죽을 드시게 하려던 것도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으신다고 했다.
다행히 의식도 찾으시고 했지만 아직은 완전히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오신 것 같지는 않았다.
말씀하시는 거나 행동하시는 거에서 어린애 같이 하시는 게 있고 이전에 쓰지 않으시던 말투를 쓰시기도 했다.
그래도 이렇게 깨어나신 게 얼마나 다행인가...
지옥과도 같았던 몇 날 며칠은 아무것도 아닌 듯 아빠는 그렇게 잠에서 깨어나시듯 일어나셔서 천진난만하게 웃고 계셨다.
아침이 돼서 신경과에서 오셔서 아빠에게 '지금이 몇 월이냐', '여기가 어디냐'등 이런저런 질문을 하고 팔을 뻗어 보게 하는 등 협진을 했다.
아빠는 지금은 몇 년 몇 월 인지도 모르고 질문의 대부분에 아직은 대답을 못하셨다.
그래도 이렇게 스스로 일어나시기도 하고 눈을 맞추고 대화를 할 수 있는 이런 일상들이 너무도 크게 느껴졌다.
다음 날에는 혈액투석을 하는 데 다시 복부 통증을 호소하셨고 또 모르핀을 3mg 맞았다.
모르핀을 맞고 혹시나 다시 잠에 빠지시는 건 아닌가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생각해보면 이때부터 아빠는 기력이 많이 약해지셨었다.
거동하시는 것도 혼자서는 힘들어지셨고 자꾸 쓰러지시려고 하셨으며 혈액 투석도 이전과는 확연히 다르게 버티시질 못했다.
화장실 가시는 것도 힘들어서 기저귀도 계속 하고 계셔야 했다.
폐 CT와 뇌파 검사를 하고 다음부터는 전신 항암제를 먹는 걸로 항암을 하기로 하고 퇴원을 했다.
일어나셔서 퇴원하게 됐다는 게 그저 감사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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